“보험료 오르니까 그냥 우리끼리 처리하자. 치료비랑 위로금 넉넉히 줄게.”
직장에서 일하다 부상을 당했을 때 이런 제안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장님의 인간적인 호소, 또는 은근한 압박에 못 이겨 결국 개인적으로 치료비를 받는 ‘사적 합의’를 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어쩌면 당장 손에 들어오는 현금 몇백 불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분의 미래를 담보로 하는 매우 위험한 ‘도박’입니다. 회사와의 이러한 ‘사적 합의’가 왜 절대로 피해야 할 결정인지, 그리고 고용주가 이런 식으로 산재 처리를 회피하려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번 글에서 다뤄보겠습니다.
"우리끼리 해결하자"는 달콤한 유혹, 그 이면에는...
고용주가 WorkCover 처리를 꺼리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산재 클레임이 발생하면 다음 해 보험료(Premium)가 인상될 수 있고, 복잡한 서류 작업과 WorkSafe (또는 해당 주의 산재 관리 기관)의 조사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용주는 피해 근로자에게 이런 제안을 하곤 합니다.
“치료비 내가 $500 내줄게.”
“일 못하는 동안 월급도 2주 정도 그냥 줄게.”
“병원비 영수증 가져오면 다 갚아줄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온 고용주의 제안이라 거절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근로자는 법적 보호망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적 합의가 '독'이 되는 이유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사적 합의는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① 치료비 한도의 문제
처음에는 가벼운 부상으로 보여 $500-$1,000 정도면 충분할 것 같지만, 부상은 예상과 다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 가벼운 염좌인 줄 알았는데 MRI 검사 결과 인대 파열로 판명되어 수술이 필요한 경우
- 허리 통증이 만성화되어 물리치료, 전문의 상담, 주사 치료 등이 수개월 필요한 경우
- 초기 치료 후 회복되는 듯했으나 몇 주 후 증상이 재발하거나 악화되는 경우
사적 합의 시: 추가 치료비가 수천 불로 늘어날 때, 고용주가 계속 책임져 줄 가능성은 낮습니다. 대부분은 “그때 합의금 주고 끝난 거 아니냐”며 추가 지급을 거부하거나, 연락을 피하게 됩니다.
WorkCover 처리 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면, 해당 산재 관련 적절한 치료라고 여겨지는 의료비용이 (GP 진료, 전문의 상담, 수술, 물리치료, 재활 등) 승인된 범위 내에서 보장됩니다. 또한 산재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임금 (Wage Payments)도 일부분 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② 소득 보상의 부재
WorkCover는 단순히 치료비만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상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을 때 임금(Wage Payments)의 일부분을 보상받을 수 있고, 부상이 심각하여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경우 영구장해 보상금(Lump Sum Compensation) 청구가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사적 합의로 받은 몇백 불은 이러한 소득 보상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만약 부상이 악화되어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요?
③ 기록의 부재와 입증 책임의 문제
일터에서 공식적인 사고 리포트가 없고, 병원 기록에도 ‘업무상 재해’가 아닌 ‘개인적인 부상’으로 남게 되면, 나중에 법적으로 다투고 싶어도 증거가 부족하여 입증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문제가 됩니다.
- 고용주가 나중에 “그 부상은 일터에서 일어난 게 아니다”라고 주장할 때
-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 후 같은 부위의 부상이 재발하거나 악화되었을 때
- 시간이 지나 부상의 장기적 영향이 드러났을 때
WorkCover 시스템에서는 사고 발생 시점부터 공식 기록을 남기고, 의료 기록에도 명확히 ‘업무 관련 부상’으로 문서화되므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④ 법적 권리의 포기 위험
사적 합의를 하면서 고용주가 “이 돈 받고 나중에 산재 신청 안 한다”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합의가 법적으로 완전히 유효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 분쟁 상황에서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골든 타임' 지키기
고용주가 사적 합의를 종용하더라도, 여러분은 냉정하게 다음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Step 1. 즉시 사고를 공식적으로 리포트하세요
호주 각 주의 산재법은 부상 발생 후 가능한 한 빨리 고용주에게 사고를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 일터에 사고 리포트 폼(Incident Report Form)이 있다면 그것을 작성하고 사본을 보관하세요.
- 폼이 없는 경우,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사고 날짜, 시간, 장소, 사고 경위, 부상 부위를 명확히 기록하여 고용주에게 보내고 사본을 보관하세요.
- 구두로만 알린 경우, 반드시 서면으로 다시 확인하세요. “오늘 말씀드린 대로, [날짜]에 [장소]에서 [사고 내용]으로 [부상 부위]를 다쳤습니다”라고 기록을 남기세요.
Step 2. 병원(GP) 방문 시 첫마디가 중요합니다
의사가 “어떻게 다치셨어요?”라고 물을 때, 고용주 눈치가 보인다고 “집에서 넘어졌어요” 또는 “운동하다 다쳤어요”라고 거짓말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
반드시 “일터에서/일하다가 다쳤습니다“라고 명확히 말하세요.
의사의 진료 기록(Clinical Notes)은 법적으로 매우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나중에 기록을 바꾸려 해도 의료 기록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어 클레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Step 3. Certificate of Capacity (산재용 진단서) 발급받기
GP에게 일반 진단서(Medical Certificate)가 아닌, 산재용 진단서인 “Certificate of Capacity”를 발급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Certificate of Capacity는:
- 부상의 정도와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공식 의료 문서입니다.
- WorkCover 클레임 신청 시 필수 서류입니다.
- 부상때문에 일을 할 수 없거나 제한된 시간만 일이 가능한 경우, 임금 보상 (Wage Payments)을 받기 위한 근거가 됩니다.
Step 4. WorkCover 클레임을 정식으로 신청하세요
Certificate of Capacity와 사고 리포트를 준비한 후:
- 고용주를 통해 보험사에 클레임을 제출하거나
- 고용주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근로자가 직접 해당 주의 산재 관리 기관이나 보험사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워커버 클레임은 사고 직후 최대한 빨리 신청해야 합니다. 사고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나면 클레임이 거부될 수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신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용주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산재 신청하려면 사장님 허락이 필요한데, 절대 안 해줘요.”
이것은 흔한 오해입니다. 고용주의 동의나 서명 없이도 WorkCover 신청이 가능합니다.
- 근로자가 직접 신청 가능: 각 주의 산재 관리 기관(예: NSW의 icare, VIC의 WorkSafe Victoria, QLD의 WorkCover Queensland 등)에 직접 연락하여 클레임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 보험사의 조사 의무: 클레임이 접수되면, 보험사는 고용주에게 연락하여 사고 사실을 확인합니다. 고용주는 법적으로 정보 제공 의무가 있으며, 거부하거나 방해할 경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불이익 처우 금지: 고용주가 산재 신청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명백히 불법입니다. 이러한 경우 Fair Work Commission에 추가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이미 현금을 받았다면요?
“모르고 사장님이 준 치료비를 받았어요. 저는 이제 산재 신청을 못하나요?”
아닙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현금을 받았어도 여전히 WorkCover 신청이 가능합니다.
- 사적 합의의 법적 효력 제한: 고용주가 “너는 이미 현금을 받았으니 산재 신청 못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산재 보상을 받을 권리는 근로자의 법정 권리(Statutory Right)입니다. 이러한 기본 권리 포기 요구가 포함된 사적 합의는 법원에서 효력이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 받은 금액 반환: 고용주에게 받으신 현금은 바로 고용주에게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 서면 합의서가 있는 경우: 만약 고용주와 서면 합의를 했고, “향후 모든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조항은 여러분의 산재 보상 청구권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마치며: 사장님의 '지갑'보다 여러분의 '미래'가 소중합니다
고용주와의 관계 때문에, 혹은 당장의 번거로움 때문에 권리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호주의 WorkCover 제도는 여러분이 다치고 아플 때, 눈치 보지 않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일을 할 수 없는 동안 소득을 보장받으며,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강제 보험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핵심:
- 사고 발생 즉시 서면으로 리포트하세요
- 의사에게 “일하다 다쳤다”고 명확히 말하세요
- Certificate of Capacity를 발급받으세요
- 고용주의 동의 없이도 신청 가능합니다
- 이미 현금을 받았어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미래는 어떤 것보다 소중합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필요하다면 산재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세요.



